역사적 정통성’이라는 존재가 지닌 타협불가(妥協不可)의 가치성 때문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기까지에는 동북3성 지역을 ‘고구려의 고토(故土)’로 바라보던 한국인의 향수어린 시선이 그들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들어 일본의 고대사를 중심으
고대 동아시아 역사상을 해체하고 자율적인 시민의 입장에서 새로운 고대 동아시아 역사상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저자의 시도야말로 자기 민족 중심의 역사 인식에 대한 가장 철저한 안티테제가 아닐까?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을 포장하기 위해 일본 및 한국의 역사학이 어떻게 성립했는지,
잘 전파되고 확산될 수 있었기 때문에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거치면서, 혹은 여러 지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변지역으로 확산, 전파되어 나가면서 오늘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문화권,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문화권)라는 범주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역사적, 사회학적 “근대화 연구“이다. 여기서는 근대화의 조건과 동력에 관하여 그리고 전근대적이며 전통적 사회의 경직성, 정체성, 그리고 관성의 극복과정에 관하여 일반적 형식으로 서술하거나 설명한다. 이러한 근대화 연구에서는 암시적으로나 규범적으로 민주적이며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우리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더욱 더 근본적으로 고구려나 발해라는 고대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과연 우리에게 민족은 무엇이며 국사는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배경들과 함께 발표 조원들의 의견을 모아봤다.
중국혁명동맹회(中國革命同盟會)를 설립했고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에서 임시대통령에 추대되어 다음해 중화민국의 성립과 동시에 대통령에 취임하였지만, 원세개(袁世凱)에게 부득이 양보하고 사임하였다. 그 후에 여러 번 망명생활을 하다 일본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1917년에는 광동군정부를 만
한국가의 경제적 역량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당연히 중국이 제국화로 갈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에 대한 출발점은 경제적 부흥으로부터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의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것을 규정한다는 논리의 적실성은 다시
말이다.) 아무튼, 내가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왜 인류의 기원이 될 수 있었던 유인원이 한국이지를 못했고, 그런 원시인에게 화물의 기술을 전수해주고 문화를 이끌어 준 것이 한국인이 아니었냐는 점이다. 비록 내 이 얼토당토 없는 상상력은 책을 읽으면서 사라져 가기는 하지만...
일본부(임나일본부설)의 특징
임나일본부는 임나와 일본과 부의 합성어이다. 임나는 광개토왕비, 삼국사기의 강수전, 진경대사탑비, 한원, 통전(通典)등 한국과 중국의 문헌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가야지역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이란 국호는 7세기 이후에나 확인되는 것으로 임나일본
일본인으로서의 동질성을 위한 구심점 역할은 권력을 장악한 장군에게는, 천황으로부터 임명받음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필요하였고 백성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사가 지배하는 막부는 통치권의 행사를 맡은 만큼 정치의 운세에 따라 교체가 되지